영국·네덜란드의 ‘Low Traffic Neighborhood’ 실험
‘걷기 좋은 도시’ ‘사람 중심의 거리’는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실제로 자동차 진입을 줄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최근 영국과 네덜란드는 조금 급진적인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Low Traffic Neighborhood’(LTN),
말 그대로 “자동차 통행을 최소화한 생활권” 정책입니다.
1️⃣ LTN 정책이란 무엇인가?
Low Traffic Neighborhood, 줄여서 LTN은
주거지 내부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것을 물리적으로 차단하고
도로를 보행자, 자전거, 커뮤니티 공간으로 재편하는 정책입니다.
✅ 주요 구성
- 주거지 안쪽 도로에는 자동차 진입 금지
- 우회도로(간선도로)만 자동차 통행 허용
- 막힌 도로는 자전거·보행자 전용길, 또는 소규모 광장으로 전환
- 일방통행로 및 ‘Motor Filter(차량차단봉)’ 설치
👉 쉽게 말해
“우리 동네로 자동차가 지나가기만 하고 **머물지 않네… → 그 흐름을 차단하자” 라는 매우 명확한 접근입니다.
2️⃣ 영국 사례 – “환경은 좋아졌는데, 주민 갈등이 생겼다”
영국 런던에서는 2020년부터 LTN 정책을 본격 도입했습니다.
특히 해링게이(Haringey), 램버스(Lambeth) 같은 동네에서 강하게 추진됐는데,
초반 반응은 의외로 긍정적이었습니다.
- 차량 통행량 ↓ 46%
- PM10(미세먼지) ↓ 15%
- 보행·자전거 이동량 ↑ 35%
하지만 6개월쯤 지나면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차를 막으니까 우회도로가 더 막히고,
배달 트럭이 들어오지 못해 가게 매출이 떨어졌다.”
실제로 신선식품을 파는 작은 상점은
“트럭이 진입하지 못하니까 배달 시간이 1~2시간씩 지연되고 있다”는
항의 서한을 시청에 보냈죠.
즉,
👨👩👧 주민 입장 → 동네가 조용해지고 쾌적해짐
🏪 상권 입장 → 고객·물류 접근성이 낮아져 매출 감소
이 두 입장이 강하게 충돌하면서
일부 지역은 주민투표를 통해 LTN 정책을 철회하기도 했습니다.
3️⃣ 네덜란드 사례 – “자동차 진입 제한 + 상권 보완책 세트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LTN 정책을 추진했지만
영국과는 다르게 초기 설계 단계에서 ‘상권 영향’을 함께 평가했습니다.
- 상업지구 주변에는 제한적으로 차량 진입 허용
- 대신 공영 공유주차장 + 도보 5분 생활권 상품권 제도를 같이 도입
- 동네 소상공인이 감소할 경우 정책 시범구역 전면 중단을 사전에 규정
그 결과, 자동차 통행량을 줄이면서도
상권 매출은 기존 대비 3~8% 증가했습니다.
길이 조용해지고 보행자 공간이 늘어나니, “동네 상점에 머무를 시간”이 오히려 늘어난 것이죠.
4️⃣ 한국 도시에 주는 시사점
서울, 부산, 대구 등에서도 “차 없는 거리”“보행친화거리” 정책이 도입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벤트형 일시 통제 수준인 경우가 많습니다.
파리의 15분 도시처럼,
영국·네덜란드의 LTN처럼,
생활권 전체의 이동 패턴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정책은 거의 없죠.
👉 만약 한국에서 LTN과 유사한 정책을 도입한다면
다음 두 가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합니다.
고려사항 | 설명 |
① 상권 영향 분석 | 자동차 진입 제한 = 곧 “상업 접근성 저하” 가능성 → 소상공인 보완책 필요 |
② 생활권 전체 흐름 설계 | 한 블록만 막으면 통과 교통은 옆 블록으로 이동 → 인접 지역까지 고려한 설계 필요 |
✅ 마무리 – “조용한 동네”는 좋은가, “살기 좋은 동네”가 좋은가
Low Traffic Neighborhood는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를 만들겠다는 아주 명확한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책이 모든 주민에게 똑같이 긍정적인 결과로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 보행자에게는 최고의 정책일 수 있고
🚚 상인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정책일 수도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자동차를 막느냐”가 아니라,
그 이후에 동네 안에 어떤 활동을 새롭게 채워 넣느냐 입니다.
차를 막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를 수 있는 이유까지 설계했을 때,
비로소 LTN은 “살기 좋은 도시”라는 이름으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