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시청이 2019년 내놓은 도시비전은 전 세계 도시계획자들을 열광시켰습니다.
“모든 시민이 걸어서 15분 안에 학교, 병원, 공원, 상점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
이른바 ‘15분 도시(15-minute city)’ 개념입니다.
탄소를 줄이고 삶의 질을 높이며, 거대한 도시를 ‘작은 생활권의 모음’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었죠.
하지만 시행 3~4년이 지난 지금, 파리 현지에서는 조금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삶이 편해진 건 맞지만, 과연 이게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되고 있을까?”
1️⃣ 15분 도시란 무엇인가 – “도시를 거대한 마을로 만든다”
15분 도시는 단순한 교통정책이 아닙니다.
‘직장, 식료품점, 병원, 학교, 녹지, 문화공간’이
도보 또는 자전거 15분 안에 반경으로 재배치되도록 도시환경을 바꾸는 전략입니다.
파리는 이를 위해
- 기존 도로를 차에서 자전거도로/보행로로 전환
- 공원 없는 지역에는 소규모 커뮤니티 공원 설치
- 대형마트 → 인근소매상 분산 정책 추진
을 강력하게 시행했습니다.
처음엔 시민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동네 안에서 모든 걸 누릴 수 있다”는 만족감이 확산됐거든요.
2️⃣ 그런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생활권 인프라가 좋아지자
▶ 그 지역의 집값이 오르기 시작했고
▶ 기존 중저소득층 주민들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파리 11구·12구 일대에서는
15분 도시 인프라 구축 후 23년 사이 평균 임대료가 3040% 급등했습니다.
일부 부동산 사이트에서는
“15분 도시 완성구역 프리미엄”
이라는 문구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생활권을 개선하자, 오히려 그 생활권이
기존 주민에게는 ‘살 수 없는 동네’가 되었다❞
라는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되기 시작했습니다.
3️⃣ 왜 이런 역효과가 생겼을까?
15분 도시 정책은 생활 인프라 배치에 집중했지만
- 임대료 규제
- 공공임대 비율 유지
- 소득별 이주 방지 대책
같은 ‘사회적 안전장치’가 함께 설계되지 않았습니다.
즉, “도시 구조를 고친 것” 까지는 좋았지만 “그 고친 도시에서 누가 살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겁니다.
프랑스 도시사회학자들은 이 현상을
“친환경 젠트리피케이션(green gentrification)” 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4️⃣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한국에서도 최근 “15분 도시”라는 단어가 서울플랜2040, 경기플랜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제도 차용 자체는 바람직하지만 파리 사례는 중요한 질문을 남깁니다.
✔ 동네가 좋아지는 건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정말 “모든 주민”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가?
15분 도시가 성공하려면
✔ 생활권 인프라 재배치 정책과
✔ 임대료 안정 / 취약계층 주거 보장이
항상 동시에 설계되어야 합니다.
✅ 마무리 –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과 “모두가 살 수 있는 도시는 다를 수 있다”
파리는 도시생활의 질을 높였지만 그 좋은 도시에서 가장 먼저 나간 것은 오히려 원래 살던 주민들이었습니다.
15분 도시는 여전히 매력적인 개념입니다.
다만,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자”라는 계획은
늘 “이 동네에 누가 계속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가야 비로소 완성됩니다.